바른생활
[책] 여행의 이유, 나는 왜 떠나는가? 본문
<여행은 한 편의 축소 된 인생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떠난다.>
들어가며, 나는 김영하를 좋아한다. 남자로서 매력(?)을 느낀다기 보다 그의 타고난 이야기꾼 기질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의 책은 항상 기대된다. 나는 그의 소설보다 산문집을 더 좋아한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의 이유>에서 그는 가장 좋아하는 것 두 가지를 글쓰기와 여행으로 꼽았다. 나도 두 가지를 가장 좋아한다. 어린시절부터 꾸준히 일기를 쓰는 것으로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말하기 민망하지만, 내가 가진 '생각'을 남길 수 있는 '글'에 굉장한 매력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작가'는 내게도 꿈과 같은 직업이다.
[여행의 이유]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었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왜 여행을 떠나는가?"에 대한 물음에 자신의 답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떠나고 싶어한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낀다. 그래서 왜?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한 것 같다. 그가 전해주는 여행의 이유들은 나의 이유이며, 당신의 이유라고 생각된다. 다양한 자료들(대부분은 책이다)을 가지고 오면서 자신이 떠나는 이유를 설명하는 그의 대답은 설득력이 있다. 당신도 이 책을 통해서 내가 떠나는 이유를 찾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떠나지 않으면서도 당신의 일상이, 현재의 순간이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저자 : 김영하
- 기간 : 2020.1.30(목) ~ 2020.2.2(일)
- 평점 : 8점
- 책속의 한 줄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처럼 '추구의 플롯'으로 구축된 이야기들에는 대부분 두 가지 층위의 목표가 있다. 주인공이 드러내놓고 추구하는 것(외면적 목표)과 주인공 자신도 잘 모르는 채 추구하는 것(내면저거 목표), 이렇게 나눌 수 있다. '추구의 플롯'에 따라 잘 쓰인 이야기는 주인공이 외면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라 내면적으로 간절히 원하던 것을 달성하도록 하고, 그런 이야기가 관객에게도 깊은 만족감을 준다.
여행을 통해 뭔가 소중한 것을 얻어 돌아와야 한다는 관념은 세상의 거의 모든 문화에서 발견된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평범한 회사원? 그런 인물은 없이." 모든 인간은 다 다르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조금씩은 다 이상하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다름'과 '이상함'을 끝까지 추적해 생생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리베카 솔닛은 걷기와 방랑벽에 대한 에세이에서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생각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방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적고 있다.
생각과 경험의 관계는 산책을 하는 개와 주인의 관계와 비슷하다. 생각을 따라 경험하기도 하고, 경험이 생각을 끌어내기도 한다.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생각으로 정리되고, 그 생각의 결과로 다시 움직이게 된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먹을 것과 ㅈ잘 곳을 확보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스토어학파의 철학자들이 거듭하여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한다.
다른 사람을 시켜 대신 여행하게 하고 자신이 나중에 그것을 재구성하는 데에는 어떤 이점이 있을까? 바야르에 의하면 그것은 '어떤 타자를 감수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여행했을 때에는 놓칠 수 있는 것을 타인을 통해 경험하는 것, 타인이 놓쳤을 어떤 것을 상상력을 동원해 복원하는 것, 이런 것들이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보았다.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김현경에 의하면 그림자는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무엇'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성원권'일 것이다.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타인이 우리를 사람으로 받아들여주어야 한다.
환대는 이렇게 순환하면서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그럴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이런 환대의 순환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도 나는 비행기가 힘차게 활주로를 박차고 인천공항을 이륙하는 순간마다 삶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는 기분이 든다.
<책속에 추천 도서>
- 로널드 B.토비아스 :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
- 데이비드 실지 :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 피에르 바야르 :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 그림자를 판 사나이
- 김현경 : 사람, 장소, 환대
'읽다_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 #2. 마흔을 준비하며 (0) | 2020.03.15 |
---|---|
[책]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 #1. 재미있게 산다는 것 (0) | 2020.02.25 |
[책] 열한계단, 성장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0) | 2020.02.02 |
[책] 개인주의자, 내가 살아가는 방법 (0) | 2020.02.02 |
[책] 유쾌한 이코노미스트의 스마트한 경제 공부, 경제필독서 (0) | 2020.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