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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의 그릇(무엇이 인생의 차이를 만드는가)

바른소년 2021. 1. 17. 22:21

"운이란 타고난 나의 특징(명: 생년월일시, 고정적이고 불변함)을 토대로

특정 시간·장소(운: 동적으로 상호작용함)에 처한 내가 주변 환경과 교류하는 모습 일체를 뜻함"

 

#운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명리학의 관점에서 운을 움직이기 위해 크게 두 가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첫 번째는 생년월일시, 사주팔자로 결정되는 그 사람의 특징(기운)이라는 어려움이다. 명리학은 자연 속의 개인을 표현하는 이론으로 기본적으로 제약이 많다. 나무(木)로 태어나 뿌리가 땅에 박혀 있으면 마음대로 사는 곳을 옮길 수 없다.

두 번째는 시기의 어려움이다. 가을에 씨 뿌리면 벼가 자라지 않는 것처럼, 비바람이 오면 고기잡이를 나갈 수 없는 것처럼, '때'를 얻지 못하면 모든 일은 노력만으로 이루기 어렵다.

이 두 가지 어려움은 할 수 있는 것을 차근차근 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으로 대처할 수 있다. 그러면 다가올 좋은 운이 증폭되고, 어려운 시기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 이것이 운을 움직이는 방법이다.

 

또한, 우리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이라 단점을 그대로 둔 채로 성공하기 어렵다. 일단 과락을 없애는 것이 우선이다. 그 다음에 장점을 개발해도 늦지 않다. 내가 갖고 있는 단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제거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느 성악가로부터 좋은 운의 원리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목 관리를 어떻게 하십니까?"  "목에 나쁜 것들을 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운을 밀어내는 습관을 먼저 배우고, 운을 끌어당기는 습관을 익히는 것이 순서이다.

 

#운을 밀어내는 습관

첫째, 잘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우선한다. 대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같은 사람들이다. 특별한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대단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상황보다 사람을 믿는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일부러 남을 해치지 않지만, 그렇다고 자기 이익까지 희생하지는 않는다. 즉, 상대방이 향후 어떤 상황에 처할지 예측하기 어려우며(오늘 → 내일), 우리는 모두 일대일 관계가 아닌 다대다 관계이기 때문에 상황에 영향 아래에 있는 것이다. 합리적인 의심 없이 무턱대고 상대를 믿는 것은 '나의 운을 다른 사람의 운에 맡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셋째, 잘못된 신념을 고수한다. 자연의 순환이 평화로울 때는 나무는 나무대로, 풀은 풀대로, 강물은 강물대로, 바위는 바위대로 존재한다. 즉, 우리는 각자의 타고난 음양오행의 모습대로 존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넷째, 단기적인 관계와 성과를 추구한다. 관계를 잘 이끄는 핵심원리 자체는 간단하다. '나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전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개체로서의 나를 다른 개체의 눈으로 보고, 전체 자연의 눈으로 보는 과정을 반복한다. 정신의학에서 역할을 바꾸어보는 심리극과 같다고 보면 된다.

다섯째, 절대 약점을 알지 못한다. 나의 약점을 찾기 위한 방법은 힘들었던 시기를 생각한 후에 원인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적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을 '나에서 비롯된 것'과 '외부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누어 적는다. 그 중 '나에서 비롯된 것'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요인에 집중해야 한다.

여섯째,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이것은 자신의 과거 경험을 기준으로만 보거나, 자기 자신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게 되기 때문에 생긴다. 즉,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고방식과 태도는 과감히 바꿀 필요가 있다.

 

#운을  끌어당기는 습관

'나 중심의 사고'가 들어오는 좋은 운을 가로막는 것이다. 반대로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크고 넓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다. 좋은 운을 얻기 위해서는 나의 특징이 장점으로 작용하는 장소와 시간에 나를 위치시켜야 하는 것이다.

첫째, 비교하지 않는다. 명리학에서 운을 따질 때는 인간과 환경, 이 두 가지 요소만 고려한다. 즉, 인간관계를 포함한 내 주변은 내가 사는 환경이자 내 운을 움직이는 공간임을 깨달아야 한다. 상대방과의 관계도 '상황(환경)과 나의 관계'로 보게 되면서 악연으로 만들지 않게 된다. 또한, 남에게 잘 대해줄 때도 기대하지 않게 된다.

둘째, 노력의 한계를 안다.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으며, 목표를 바꾸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목표를 비워내면 새로운 꿈이 내 안에 들어온다는 믿음으로 용기를 내야 한다.

셋째, 환경에 순응하거나 환경을 옮긴다. 서핑을 보면 인생을 알 수 있다. 대운이라는 파도를 잘 타려면 어느 해안에서 서핑을 할지,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고 싶은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해안가를 정하는 것이 목표라면, 파도를 탈 때의 멋진 모습은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데서나 준비 없이 서핑하는 사람에게는 파도의 특징을 연구할 이유가 없다.

넷째, '전략적 인내심'이 있다. 명리학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목·화·토·금·수의 공간적 구성, 춘하추동의 사계절에 따른 시간적 구성을 따른다고 본다. 성공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큰 흐름과 방향에 대한 신념이 있다면 때가 오길 기다릴 뿐이고,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과 때가 온 것임을 포착하는 안목이 실력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감정은 잊고 교훈은 기억한다. 과거의 성공이나 실수에서 교훈만 남기고 기쁨과 좌절의 감정을 제거하는 사람이 좋은 운을 불러들인다. 음양오행을 차지하고라도, 과거에 발이 묶이면 현재를 잘살 수 없다. 이전의 성고에 과도하게 몰입하면 중년 나이에 '소싯적에 내신 1등급이었다'는 이야기나 하며 지금의 자신을 부정하게 된다.

여섯째, '긍정'으로 '긍정'을 만든다. 긍정적인 사람은 사주 상담 또는 코칭, 조언 등을 받고 납득이 갔다면 일단 움직인다. 부정적인 사람은 '과연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올까' 의심하다가 시간만 보낸다. 움직여야 상태가 변한다. 보다 적극적인 긍정주의가 필요하다.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다.

일곱번째, 말의 힘을 안다. 말의 기운은 귀를 거쳐 자신의 마음으로 들어오고, 남의 귀를 거쳐 남의 마음으로 들어간다. 마음이 말을 만들고, 말이 다시 마음을 만드는 상호순환 관계다. 감정이란 것도 주변 환경의 재료들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구성하는 것으로 기쁨과 슬픔도 원래 우리 안에 존재하기보다, 사회문화적 환경 요소들의 영향을 받아 특정 상황에 특정 감정이 형성되도록 학습된다고 한다.(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中)

여덟번째, 자신을 안다. 목표나 마음 상태를 문장으로 적어보고 정기적으로 녹음하고 들어보자. 마음이 원하는 소리를 들으면 환경에서 오는 소리에도 새로운 귀가 트인다. 자신과 대화하지 않는 사람이 환경과 대화를 잘하기 쉽지 않다.

아홉번째, 나눔과 운동이 습관이다. 신체적으로 영양분을 섭취하고 남는 에너지를 배출하는 것이 기의 순환이다. 요즘에는 적게 먹어서 생기는 문제보다 남는 에너지를 배출하지 못해 생기는 문제가 더 많다. 그래서 운동으로 에너지를 배출해야 한다. 정신적으로는 종교 활동이나 명상 같은 것들도 좋지만 무엇보다 '기부'가 좋다. 기부는 남을 돕는 행위다. 마음을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므로 내 마음의 일정 부분이 밖으로 배출되는 것이다.

열번째, 불확실한 상황을 두려워하기보다 기회로 삼는다. 정밀한 예측은 사주 분석가도, 경제 전문가도, 재무 컨설턴트도 할 수 없다. 세상의 미래는 사람 머리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수많은 인물과 인물 사이의 네트워크 관계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자연 상황까지 겹치면 인과관계의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서 예측이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큰 그림을 전망할 수 있을 뿐 예측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전망을 가져온 세부 요인들 중 대표적인 것들만 따라가며 이해할 뿐이다. 예측하지 못하는 불안감을 '미확정에서 오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너무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운은 변화하는가?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 세 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은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오마에 겐이치, 난문쾌답 中>

 

즉, 우리는 결심만으로 변화할 수 없고 주변 환경 자체가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게 만들어야 한다. 모두가 성인군자가 될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을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세상 속의 한 개체로 보면 길게는 좋은 운이 찾아오고 당장은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길이다.